오늘은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으로 보냈던 주역 중 한 명, 맨유의 엠버서더인 박지성 선수를 포스팅하겠습니다.

 

 

                                                     

 

                                          출생: 1981년 2월 25일

                                                     

                                          신체: 175cm, 72kg

                                           

                                          포지션: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소속팀:  교토 퍼플 상가 (2000~2003)  

                                                     PSV 에인트호번 (2003~20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2005~2012)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2~2014)
                                                     PSV 에인트호번 (2013~2014, 임대)

                                         

                                          대표팀: 100경기 13골 (대한민국)

 

 

 

박지성은 어린 시절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고 6학년 때 차범근 축구상을 받을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 그 후 축구를 계속 해오다가 작은 키와 평발로 주목받지 못하여 명지대에 겨우 들어가게 된다. 명지대에 있다 2000년 교토 퍼플 상가에서 프로 데뷔를 하게 된다. 

 

 

 

 

 

 

J리그 교토 퍼플 상가에서 뛰고 있는 도중 2002년 월드컵 히딩크호에 소집이 된다.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헤딩골을 넣고 한국 사람들의 많은 기대를 얻게 된다. 그리고 조별리그 포르투갈전에서 그 유명한 왼발 발리슛으로 득점에 성공하고 단숨해 슈퍼스타가 된다. 이 경기를 승리로 승승장구해 우리나라를 4위까지 만든 주역이 된다. 이후 히딩크의 부름을 받고 3년 6개월의 100만 달러의 조건으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을 가게 된다.

 

 

 

 

 

2002-2003 시즌은 이적을 한 첫 시즌이라 적응을 하는 시기고 부상을 얻어 딱히 보여준 플레이가 없었다.

 

 

2003-2004 시즌 시즌 초 서투른 네덜란드어와 부진으로 홈팬도 야유를 보낼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기량이 올라와 주요 선수로 성장했다.

 

 

2004-2005 시즌 박지성은  아인트호번이 에레디지비에(네덜란드 축구리그)를  우승하는데 큰 기여를 했고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도 큰 기여를 했다. 최고의 해를 보냈다. 더욱 좋은 소식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이적 제안이 온것였다.

유명한 퍼거슨 감독과의 만남이었다. 

 

 

 

 

 

 

 

2005년 6월 22일 정식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된다.

 

 

2005-2006 시즌  박지성은 등번호 13번을 배정받고 무난하게 팀에 적응하였고 데뷔골은 2006년 아스널전에 넣었다. 나쁘지 않게 첫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2006-2007 시즌 오른쪽 윙어 호날두와 왼쪽 윙어 긱스와 번갈아 가면서 경기를 뛰었고  토트넘에서 부상을 얻어 3개월가량 회복하고 경기에 나섰다. 부상으로부터 돌아온 박지성은 폼이 더 올라간 상태에서 왔고 팀의 우승에 기여를 하였다. 아시아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다. 또한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활약했다.

 

 

2007-2008 시즌 오랜 재활치료를 하고 돌아와 적응을 하던 박지성은 성적이 좋지 못해 팬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팀의 기여를 한 결과 박지성은 아시아 최초로 3 연속 팀 챔스 4강이라는 커리어를 얻었다. 결승전까지 팀이 진출했지만 박지성은 결승전을 뛰지 못한 채로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게 된다. 

 

 

2008-2009 시즌  시즌 초에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다가 기회를 잡고 공수 가리지 않고 뛰어난 체력으로 팀을 위해 뛰었다. 바르셀로나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무대를 66분 뛰었다. 이걸로 아시아 최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뛴 선수가 되었다.

 

 

2009-2010 시즌 무릎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진 못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AC밀란에서 골을 넣고 마지막 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는 등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어주고 수비 측면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2008년 김남길의 경고 누적으로 월드컵 명단에 제외된 후 한국 대표팀의 주장을 은퇴 전까지 맡았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활약을 했다.

 

 

2010-2011 시즌  맨유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자원으로 성장했고 팀이 리그 우승을 하는데 큰 공허를 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93분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바르셀로나에 3:1로 패배했다. 2011 AFC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을 은퇴한다고 발표했고 4강 일본전에서 A매치 100경기를 소화하고 이영표와 대표팀을 은퇴했다.

 

 

2011-2012 시즌  계약 연장으로 박지성의 연봉은 팀 내 3등으로 올라갔고 맨유에서의 통산 200경기 출전을 하였고 맨 유역 사상 93번째였고 아시아 최초였다. 이 시즌이 맨유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통산 205경기 27골로 맨유에서의 기록을 마무리지었다.

 

 

 

 

 

2012-2013 시즌 2년 계약으로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을 했고 팀의 주장을 맡았다. 부진한 팀의 성적을 위해 노력했지만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팀은 2부 리그로 강등하게 된다.

 

 

 

 

2013년 8월 6일 PSV 아인트호번과 1년 임대 이적으로 8년 만에 네덜란드 리그로 돌아왔다. 팀의 유로파 리그 진출에 일조한 후 현역 은퇴를 했다. 은퇴 이후 맨유 엠버서더로 선정되고 자신의 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겠다고 말하며  행정가 수업을 받고 해설가로도 활약했다. 

 

 

 

여기까지가 우리나라가 가장 사랑한 축구선수 박지성의 대한 글이었다. (최근에 코로나 19 극복을 위해 1억을 기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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